
파이트 클럽 (1999)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 헬레나 본햄 카터
예전부터 보려던 영화였다. 봐야지 봐야지, 하고 다짐만 하다가 어느새 기억 저 멀리로 내팽개쳤던 영화이기도 했다. 한동안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벼운 코미디와 로맨스 영화만 잔뜩 몰아봤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해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즐겁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할일없이 지식인을 돌아다니다가 서스펜스에 관련된 글을 접해서인지... 아무튼 이래저래 기회가 닿아 드디어 보게 된 영화다.
사실 지금껏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는 제목 탓이었다. 지금껏 반전영화라고 하면은 스릴러나 미스테리 장르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파이트 클럽' 이라는 제목과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봤을 때, 내가 기대하던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난 정말 이런 영화인줄 몰랐다!
사람들이 하도 반전이 대단하다해서 보게 된 영화인데, 보면 볼수록 몰입하게 되어서 반전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뒤통수 제대로 맞고 좀 멍했다. 나는 항상 반전영화를 보기 전에는 "철저히 제 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지 말고 냉정히 복선을 캐치하고 미리 반전을 예상해내야지!" 하는 포부가 넘친다. 그런데 정말 웬만큼 허접스러운 반전이 아니고서야, 감정이입이나 몰입도가 지나친 나로써는 늘 이렇게 뒤통수를 맞곤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몰입을 하게되는 건 그만큼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은 뒤에 가서 이렇게 황당하고 허탈한 기분을 만끽하는 걸 즐기곤 한다.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이유 몇 가지:
a) 중간 중간 삽입된 뜬금없는 장면들. 가벼운 '장난'이든 의도한 '효과'든 간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한 낌새를 차리거나 동 요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처음에는 파일이 잘못 됐나? 했는데 마지막에 성기 노출 장면이 순간적으로 휙 지나갔을 때는 의도한 것임을 깨달았다.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는데 왠지 본 것 같았 다. 그래서 내가 본게 맞나 싶어서 열심히 키보드를 눌러가며 겨우 확인했음;;;; 왜 브래드피트 얼굴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 했으면서 이런 것만 잘 캐치하고 그래 나란 애는..OTL)
b) 타일러를 '만나고' 나서 극적으로 변해가는 주인공. 특히 상사에게 자해 공갈을 할 때나 감시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혀를 내 두를 정도였음.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력에 새삼 감탄! 자유롭고 폭력적인 기질의 타일러 즉 브래드 피트의 마초적 섹시함과 나에게는 미친X 전문 배우 (맡은 역할을 보면 거의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상하고 위험한데 근데 너무 잘 소화하심) 헬레나 보 햄 카터의 매력 역시 감탄 감탄!
c) 인간의 잠재된 폭력성. 어디에나 존재하는 권위주의와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향한 비판.
이 모든것을 담고 있는 타일러와 주인공의 대화. 끊임없이 새 가구를 사들이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불면증을 호소하던 주인 공은 타일러를 만나고 나서 자신이 이태껏 추구해온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내린다. "우리는 그저 소비자일 뿐이죠."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가, 삶에 대한 집착이, 그럼에도 무엇을 위해 혹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무지와 불안이 주인공에게 수 많은 잠 못드는 밤을 선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비슷한 고민으로 불면증을 앓았던 사람으로써 다시 한 번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질주의는 나와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상황에 더 감정이입 을 하게 되었고 자연히 반전을 예측하기 위한 냉정한 '시선' 을 유지하는 것은 실패하고 만 듯?
d) 왜 삶을 컨트롤 하려해. 그냥 흘려보내. 여전히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갖고 있는 것에 '집착' 하는 주인공에게 욕지거리 와 함께 뱉은 타일러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고, 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와서야 혹은 자신이 위험 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야지만 제대로 삶을 '산다'는 메세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중반까지는 쏘우의 직쏘처럼 삶을 낭 비하고 있는 인간들을 '심판하는' 영화인줄로만 알았지...ㅎㅎ
e) 고환암에 걸리거나 백혈병을 앓지도 않는 주제에, 삶의 마지막을 맞으려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모임에 중독되었던 주인공 이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매일밤 술집 지하에 모여 싸움을 하던 파이트 클럽 멤버들이나...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삶에 대한 지독한 회의와 절망감 그리고 무기력함을 느끼고, 가슴 속에서 아우성치는 그러한 감정들을 해소하고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 이다. 가볍게 말하면 '스트레스 해소'이고 어떻게 말하면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고 싶었던 거겠지. 몇 년전의 내 자신을 보 는 것 같아서 씁쓸했지만 나는 이제 극↗뽁↗↗!!!
나머지는 쓰면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밖에 없으니 이쯤해두겠다. 여하튼 파이트 클럽은 이런 이유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탄 반전이나 배우들의 연기를 떠나서 내게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음은 확실하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앞부분에 잠시 딴짓을 하느라 놓쳤던 장면을 보기 위해 다시 틀었을 때 헛웃음을 금치 못했다. 제일 첫 장면부터 복선이 깔려있다니! 많이 당해본 일이지만 역시 이런 건... 처, 천잰데? 이 포스팅을 본 사람은 첫장면부터 유심히 지켜보시길 바란다. 그러면 필자처럼 실패하지 않고도 반전을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솔직히 말해 반전 그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러니 반전을 기대하고 보기 보다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다가 나처럼 뒤통수맞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웬만한 고어물이나 호러물을 봐도 동요하지 않는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는 이상하게 자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대한 거부감 탓인가? 감독이나 배우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영화는 그저 '쿨'한 영화인데 내가 쓸데없이 깊이 생각해서 그런가? 아니면 마지막에 삽입된 장면을 괜히 확인했나 (!) ... 음.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쿨한척하면서 속을 다 들쑤셔놓는 영화인 것 같다. 왜,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은가. 아무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것 같은데 괜히 속이 따끔따끔하게 만드는 사람. 뭐,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스포일러성 느낀점 하나 (드래그↓)
반전을 알고나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말라가 모임에서 사용하는 우습고 일관되지 않은 이런 이름들 말고 당신의 진짜 이름이 뭐냐고 주인공에게 물었었지. 근데 그거에 대한 대답도 안나왔고 심지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에드워드 노튼의 진짜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이 바보 멍충이!)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 '나' 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세심하지 못하면 알아채릴 수 없었던 반전인거지. 말라에게 "타일러는 여기 없어. 사라졌다고." 라고 말할 때 그녀의 화가난 표정 역시 알고 보면 복선이었다. 난 그냥 말라가 자기 마음을 모르고 자꾸 튕겨대는 주인공에게 화가 나서 그런 표정을 지은줄로만 알았다ㅎㅎ 심지어는 엔딩 크레딧에도 에드워드 노튼은 이름이 없다. 그저 내레이터로 소개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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